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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감에 쫓겨서야 글을 쓰는 걸까?” 우리들의 수상한 심리

기자명 : 조연희 입력시간 : 2014-03-05 (수) 10:47
“왜 마감에 쫓겨서야 글을 쓰는 걸까? 왜 시험 전날 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갈까?”
우리들의 수상한 심리, 그리고 실패를 모르는 아이들의 미래

세계적 종합 시사 잡지 ‘더 아틀랜틱 The Atlantic’의 기자 메건 맥아들은 최근 ‘Why Writers Are the Worst Procrastinators (작가들은 왜 미루기 대장들일까?)’라는 기사를 발표했다. 그녀는 기사를 통해 온실 속 화초로 자라온 우등생들과 우리가 실패하는 법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관해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하지만 마냥 웃으며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 고학력자들이 늘어가면서 점점 더 엘리트들이 많아지는 우리 사회. 그러나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왜 마감 때가 되어서야 해야 할 일들을 시작할까? 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된 흔한 심리기제들은 결국 ‘스마트’하지만 ‘스마트’하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을 꼬집어보게 만든다. 메건 맥아들은 이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국어시간에 너무도 완벽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어딘지 엉뚱한 대답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말에 귀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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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런 거야?
메건 맥아들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듯이 자신 역시 상습적으로 일을 미루는 미루기 대장(inveterate procrastinator)이라고 칭한다. 하나의 기사를 쓰는 과정에 있어서, 우선 먼저 이메일을 3000번 정도 확인하고, 장봐야 할 거리들은 쓰고 지우고 또 쓰고, 골드 스탠다드가 제안한 경제정책이 얼마나 별로인지 아닌지 트위터에서 언쟁을 벌이고, 10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동창친구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고, 초코베리맛 단백질 스무디의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보고, 자신의 이름을 여러 차례 구글에 검색하는 것 정돈 해봐야한다. 물론, 일을 문턱까지 미루고 일을 진행시키는 습관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다. 이것은 사실 우리 사이에서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메건 맥아들이 만난 한 책 편집자는, 자신이 1972년에 계약을 했던 작가와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첫 번째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런 것을 보면 미루기대장 중에서도 제일은 아무래도 작가가 아닐까.
메건은 자신의 친한 동료 중에 유명하고 재능 있는 기자에게 어떻게 글을 쓰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먼저, 2~3주 동안은 그냥 그것을 내버려둬.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에 마침내 글을 쓰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아.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일어나서 창고를 청소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아, 지금이 바로 청소를 해야 할 때구나. 그렇게 창고 청소를 끝마치고 나면 나는 부인에게로 가서 얼마 동안 이런 저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해. 그런 식으로 며칠이 더 흐른 뒤에야 나는 마감시한을 놓쳤음을 알고 기겁해. 그때가 되어서야 마침내 나는 자리를 잡고 글을 쓰지.”
비단 작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내일 오후까지 리포트 제출 과제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그리고 지금부터 시작하면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간다. 영화를 보고 났더니 이제 저녁.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새벽이 되어서야 끝나겠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 이미 여러 차례 봤던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본다. 어찌저찌 집에서 쉬다보니 이제 자정. 지금부터 꼴딱 밤을 새서 하면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마음을 잡고 책상에 앉지만 서서히 잠이 쏟아진다. 한 시간만 자고 잠을 쫓아야겠다는 생각에 책상에 엎드리고 잠을 청하지만 결국 눈을 떴을 때는 동이 떠오르고 있는 시간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제야 부랴부랴 리포트를 쓰기 시작해 턱걸이로 과제를 제출한다.
이런 사실에 흥미를 갖게 된 메건은 몇 년 동안을 지켜보다가 한 가지 이론을 터득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국어시간에 너무도 완벽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고개를 갸우뚱할 이론이다. 그러나 이어서 그녀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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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 제재, 심성, 음보, 주제’
우리는 국어시간에 너무나 완벽했다. 또, 높은 점수를 받아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수업시간에 글을 읽고 이해를 하고 맞춤법에 대해 배우면서 텍스트에 대한 핵심적인 요소를 분석하면서 배워왔던 우리. 게다가 모국어이기 때문에 다른 과목들에 비해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특히나 작가들은 타고난 언어적인 재능으로 남들보다 월등한 수준차이를 보여 왔다. 노력하는 자가 성공하는 것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쳐왔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 번 글을 읽기만 해도 어떤 내용인지 감이 잡히는 작가만의 ‘재능’은 노력하는 자들이 끝내 가질 수 없는 축복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감정은 오래 전만 해도 재능을 타고난 작가들만이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요즘 시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그 정도의 재능은 이제 대부분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적수준이 다들 조금씩 상승한 것이다.
모두가 똑똑해지면 좋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두운 이면은 반드시 존재한다. 아이들은 높은 교육열과 전문화된 학습방법으로 인해 좋은 점수를 척척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들은 ‘성공’이라는 것에 익숙해지게 된다. 이 말은 자신이 실패하게 될까봐,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될까봐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려움은 결국 엉뚱한 방어기제를 가지고 오게 한다.
그것이 바로 ‘미루기’이다. 아무것도 안 했을 때의 공포감이 별로 좋지 않은 결과물을 가져왔을 때의 공포감보다 더 낫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Their fears of turning in nothing eventually surpasses their fears of turning in something terrible.) 열심히 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물로 실망스러운 피드백을 받으면, 성공에 익숙해졌던 우리는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자기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이 폄하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런 과정을 즐기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좀 더 성장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이전까지 ‘완벽한’ ‘좋은’ 평가를 받아왔던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실패를 맞서기엔 너무나 연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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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성공은 실패의 도피처?
즉, 스스로 잘 해내지 못할 일이 주어졌을 때 자신감이 없어지고 끝까지 해냈을 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시작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루는 것이다. 이렇게 내버려두면서 패색이 짙어지는 자신의 성과를 피해보는 방어기제가 발동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받을 평가보다 절망감과 좌절감을 맛보게 될 평가가 더 두렵기 때문이다. ‘미루기’는 결코 게으르고, 무능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행동심리학자로 저명한 심리학자 캐롤 드웩은 이러한 메건의 이론에 “정확해!”라는 평가를 내렸다. 드웩은 실패에 대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냐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하고 공부해왔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실패는 모두가 좋아하지 않는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웩은 그녀의 조사를 통해서 한 가지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모든 사람들이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실패에 대해 기겁하며 반응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 할 수 없는 업무를 기피하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도전할 수 있고 또 도전을 통해 자신이 성장할 수 있음을 즐길 줄 아는 것으로 나왔다. 그들은 비록 잘하진 않지만 긍정적으로 즐기면서 일을 해낸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실패할 때, 그들이 배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드웩은 비슷한 또래 사이에서 왜 이런 다른 모습이 보이는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의 사무실에 앉아 가장 최신의 실험결과를 다시 한 번 되뇌어보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등장했다. 도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자신의 재능을 고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도전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 하지 못했던 일들을 본래 지니고 있던 재능과 합쳐 더 큰 재능으로 키운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앞서 도전을 싫어하는 사람들, 즉 지능과 성격 등 심리적 특성이 불변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고정 마음가짐(fixed mind-set)”군으로 정립하였고 도전을 즐기는 사람들, 즉 지능은 변할 수 있고 학습을 통해 발달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성장 마음가짐(growth mind-set)”군으로 구분하였다. 
성장 마음가짐의 사람들은 도전을 자신의 재능을 더욱 풍성하고 깊어지게 하는 기회라고 여기고, 고정 마음가짐의 사람들은 도전을 단지 자신의 능력이 어느 레벨쯤에 있는지 재는 것으로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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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만연한 심리증상 ‘가면현상(imposter syndrome)’
“너는 사실은 무능한 사람이야”라고 손가락질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현대인들이 너무나 많다. 자신이 사회에서 받고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에서 가면이 벗겨질까 오히려 더욱 가면을 쓰고 그 뒤에 숨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가면현상(imposter syndrome)’이라고 명명한다. 놀랍게도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떠한 순간에 이것은 사기야, 라며 가면이 벗겨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나 여성들에게서 더욱 많이 발생하고 심지어 이들은 자신들이 커리어를 쌓고 있는 분야가 아닌 것에서도 무능하다는 평가를 꺼려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자신이 빛날 수 있도록 쉬운 업무만을 찾게 된다. 난이도 있는 일들은 불편함을 고수해서라도 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도전을 강요에 못 이겨 수행하게 된다면 그들은 아마 심리학자들이 칭하는 ‘구실만들기(Self-handicapping)’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구실만들기 행동이란 자기 불구화현상, 자기 열등화현상이라고도 불리는데 자신의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실패나 과오에 대한 자기 정당화 구실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될 경우, 앞서 말했듯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지만 자신이 없을 경우 실패를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들을 만들어 실패를 하더라도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책보다 구실 탓을 할 수 있고, 뜻밖에 성공을 할 경우 자신의 자존심을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결국 ‘미루기 대장’이 되는 이유는 스스로의 능력을 믿고 있는 자기 자신의 자존심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현상이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개인의 능력을 실제로 떨어뜨리고 만다. 실패가 두려워 자신의 능력을 숨겼지만 정작 나중에는 실력을 발휘하려 해도 발휘되지 않는다. 무능함을 가장했다가 정말 무능해진다. 가면 뒤에 숨어있던 재능이 가면에 눌려 표출되지 못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알랭드 보통 역시 이 사실에 주목하며 “아무것도 안했을 때의 두려움이 형편없이 일을 마무리 했을 때의 두려움을 뛰어 넘는 순간 일은 진정으로 시작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드웩은 “제대로 된 관리 없이 앞으로만 향하는 아이들은 똑똑해지는 것에 칭찬을 받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배우는 것은 무엇이죠? 거친 도전을 이겨내는 것이 똑똑한 것은 아니라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학교를 졸업할 때, 비로소 모든 것들이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역경과 고난들에 대해 어떻게 다루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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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 키즈가 Hard work들을 포용하는 법
문제는 우리의 교육제도는 거의 고정 마음가짐을 발전시키도록 디자인되어있다. 전형적인 국어시간을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유명한 작가가 쓴 좋은 작품을 읽는다. 그리고 이것의 주제는 무엇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작가는 묘사, 구조, 상징을 어떤 방법으로 썼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험을 위해 중요한 한 구절을 암기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그러한 작품들의 초고를 보며 감탄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와 편집자에 의해 멋지게 빛나고 있는 최종작품만을 확인할 뿐이다. 선생님이 “이 부분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걸까요?”라고 물을 때, 아무도 “작가 본인도 완전히 알진 못할 거에요”라든지 “그 문장은 초고의 핵심 장면에서 나왔던 말이지만 수정하는 과정에서 삭제하는 걸 깜빡했나봐요”라고는 대답하지 않는다. 드웩은 “아이들은 작가들이 실수를 한다거나 애를 쓰며 고민을 거듭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학생들이 ‘볼품없는 작품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은 작가’라고 정의내리는 것이 결코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약 6년 전, 해설자들은 대학을 졸업한 천 명의 청년들 사이에서 비슷한 유형의 행동들을 보이고 있음을 알아챘다. 특히, 작가 론 알솝은 그들에게 ‘트로피 키즈’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이것은 ‘트로피 부인들’에 의해 아무것도 하지 못함을 뜻한다. 젊은 세대들은 승자도 패자도 없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MVP도, 어리숙한 풋내기도 없는 것으로 말이다. 그들은 모두가, 아무리 서투르다고 할지라도 그 모두가 트로피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렇게 졸업을 한 아이들은 이제 직장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상사들은 ‘새로 졸업을 하고 들어온 사람들은 학교에서 체화되었던 익숙함을 또 다시 모사하기 위해 직장으로 오는 것 같다는 불평을 한다. 그들은 확실하고 깔끔하게 잘 짜여진 업무와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한다. 마치 시험에 무엇이 나올 지를 알아내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이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주기란 너무나 힘듭니다. 마치 그들의 자아를 부수는 것 같아서요. 트로피 키즈들은 자신이 아는 것 안에서만 생각하며 움직여요.” 한 직원은 ‘Not Everyone Gets a Trophy’의 저자 브루스 툴간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메건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회의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언제나 기성세대들은 몇 세기동안 젊은 세대를 건방진 애송이라고만 불평해왔지만 정작 청년층은 자신들을 관리하는 입장인 채용자들에 대해 불평거리가 마구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이전에 어떤 과정의 수업에 들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눌 뿐 그 나이가 얼마나 훌륭한지, 그것에 따른 정신적 이미지에 대해선 전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소위 엘리트로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애지중지 길러진 것이 이제는 변화되어 왔음을 고집하여 주장했다.
렌탈차 관리를 운영하는 토드씨는 “저는 27살의 사람을 고용할 것입니다. 그는 좀 괜찮거든요. 하지만 만약 내가 23살이나 24살의 사람을 고용하게 되면 저는 매번 그들을 위해 간결하게 설명해야만 합니다. 그냥 제가 머리 위에서 조종하기만을 원해요.” 트로피 키즈, 즉 온실 속 화초로 자란 엘리트들은 아마도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고 더욱 성실하게 일할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규칙적이지 않은 일의 세계에서 매우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많은 엘리트 졸업생들이 역시나 구조화된 것에 장점을 지닌 또 다른 엘리트 졸업생로 가득 찬 금융권과 상담 및 자문의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과연 이것이 스마트한 사회로써 발전하고 있다고 칭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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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엘리트? 스펙만이 똑똑함을 증명해주는 것일까
오늘날의 세대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더 좋은 자격을 갖추고 있다. 또, 굉장히 명쾌한 지시가 있을 때에만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들은 내심 즉각적인 칭찬을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많은 어른들이 그들 삶의 모든 양상에 꽤 가까이 맴돌고 있는데 정말 의아함을 느끼지 못한 것인가. 
이것에 따른 도움방법들은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요즘, 메건은 뉴욕에 있는 대학들을 다니며 재치 있게 연설을 하곤 한다. 바로, 아이들의 성적을 위해 뻔하고 비싸기 만한 과외선생님이 되지 말라고 말이다. 요즘 부모들은 어떠한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아이비리그, 즉 높은 대학에 입학시키려고 노력한다.
지난 몇 십 년간의 이러한 인식 확장 덕분에,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위해 대학가에는 자리가 넘치고 넘친다. 하지만 명심해야할 것은 새롭게 생겨난 여석은 선택되지 않은 학교들에서만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미국인의 3분의 2는 새로운 대학에 지원한다. 그리고 그 누구라도 지원하기만 하면 입학허가가 난다. 반면 상위 10퍼센트의 엘리트 학교에서는 계속해서 여석을 거의 내지 않고 있다. 공석에 따른 욕망이 점점 더 빠르게 커지면서 이에 따라 경제도 더욱 경쟁체재로 들어서게 되면서 더불어 부모들도 자신들의 자녀가 더욱 성공하기를 보상받기 위해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엘리트 학교의 학위가 그것의 가장 가까운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즉, 갈대에 흔들리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들 스스로 일을 해결해내야 할 때 옆에서 선택만 하도록 즉각적인 지시를 내리는 감독의 역할을 맡는다. 이것은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우수한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교육 시스템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반응을 이끌어오게 만들 수밖에 없다. 마치 돈의 가치는 언제나 상승하는 것이고 작은 실수는 경주에서 낙오되게 만드는 것이다, 와 같은 인식들처럼. 하지만 이것이 정말 좋은 부모의 역할일까? 성공의 보장은 아이들을 안전한 과정에 두려고 할 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빼앗기고 있다. 바로 “그들의 실수로부터 능력을 깨우치는 것.” 재능의 또 다른 말은 은혜로운 실패이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성공만을 따르려 했던 우리들은 자신의 방어기제로 ‘미루기’라는 재미있는 심리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왜 마감에 쫓겨서야 글이 나오나. 왜 시험 전날 밤에 극장으로 가 영화를 보는 것인가. 바로 실패에 대한 공포에서다. 졸작에 두려움에 덜다가 뭐라도 내놔야 한다는 압박에서야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시험을 망쳐도 핑계거리를 만들어두려는 심리기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순간 우리의 재능은 거기에서 멈추고 말 것이다. 결국 교육체재마저도 경쟁사회로 들어가게 되면서 고학력자들은 넘치고 넘치지만 실제 일의 능률이 뛰어난 사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게으른 것을 떠나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전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이 사회의 엘리트들에게 다시 한 번 고한다. 또, 자기 자녀가 자기 학생이 엘리트가 되도록 교육하는 부모와 선생들에게도 덧붙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결과중심적인 사고방식은 반드시 깨어져야 할 것이다.

취재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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