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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 양국 문화 발전과 증진을 위해 온 힘을 바칠 것. 상해외국어대학 김기석 박사

기자명 : 조연희 입력시간 : 2014-04-01 (화) 09:39

중국과 한국, 문화교류의 다리가 되어 양국 문화 발전과 증진을 위해 온 힘을 바칠 것.

자랑스런 한국인 해외동포대상 최초의 교육자, 상해외국어대학 김기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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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줄 모르는 성장의 도시, 중국 경제의 성장엔진, 개혁개방의 선봉대,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열쇠 등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는 상해의 별칭은 수없이 많다. 상해는 우리나라와도 역사적으로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그러하고, 독립투사들의 성지인 윤봉길의사의 홍코우공원(虹口公園, 현 루쉰공원(魯迅公園))이 있다. 지금은 한국 기업들의 대 중국 진출 요충지이다. 홍코우 공원의 무거운 감동을 뒤에 두고 바라보는 시선 중앙에 상해외국어대학(上海外國語大學, Shanghai International Studies University)이 의미심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2014 자랑스런 한국인 해외동포대상을 수상한 상해외국어대학 김기석 교수는 중국 내 한국어 교육의 큰 스승이다. 교육자로는 최초로 걸출한 정치·경제·문화분야의 후보들을 제치고 해외동포대상을 수상한 그는, 상해와 한국의 긴 호흡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다리이다. 그가 배출해 낸 박사들이 중국 전역의 대학 강단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청출어람(靑出於藍)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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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와 한국의 긴 호흡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다리이다. 그가 배출해 낸 박사들이 중국 전역의 대학 강단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청출어람(靑出於藍) 전파하고 있다.

 

 

 

상해외대의 소규모 학과를 중국 최고의 한국어 인재 양성기관으로

1981년부터 한국어교육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는 연변대학에서 한국어강의를 시작한 김 교수는 부교수, 교수를 거쳐 2004년에 상해외국어대학의 초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상해외국어대학에 개설되어 있던 한국어과에는 본과정만 있을 뿐 대학원과정이 설치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보다 우수한 한국어전문가 양성의 필요성을 느낀 대학 측이 김 교수님께서 상해외국어대학으로 옮겨서 대학원과정을 개설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김 교수는 20여 년 간의 연변대학 강의를 마감하고 상해외국어대학으로 둥지를 옮겼다. 중국에서는 별도의 선정절차를 거쳐 자격이 검증된 교수만이 박사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 부교수 이하는 박사지도를 할 수 없는 구조이다. 전공교수 가운데서 꼼꼼한 심사를 거쳐 박사지도교수를 다시 선정하기 때문에 박사지도교수가 쉽게 될 수 없고 당연히 그 수가 적다. 보통 중국 교수의 정년퇴임이 60세인데 박사지도교수는 65세 까지 할 수 있게 배려한 것도 박사지도교수의 희소가치 때문이다. 중국 교육당국의 엄격한 대학원과정 설치심사에도 김 교수의 열정은 상해외국어대학의 석·박사 과정 개설로 이어졌다. 자리를 옮긴 이듬해인 2005, 바로 대학원과정 개설 신청을 하고 2006년부터 석·박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박사 후 과정도 개설하였다. 김 교수의 신뢰도는 한국어과 교수임용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 내 대학의 교수들은 대부분 한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해외국어대학도 마찬가지로 모든 학과의 교수는 대부분 한족이다. , 김 교수가 속해있는 한국어과는 조선족 출신이 6명 포함되어 있다. 학교에서 김 교수에게 보내는 신뢰도 측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2012년에는 한국어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연변대학에서 공동으로 수여하는 와룡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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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김기석 교수가 한국어 발전과 양국의 문화교류에 대한 공로로 이 상을 받는 것은 원장 입장에서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재양성에서 문화교류로, 민간 외교관이 된 한국어 교수

김 교수가 오기 전 상해외국어대학의 한국어학과는 주목받지 못하는 소규모학과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 내의 위상이 많이 올라와 있다고 자평한다. 김 교수의 한국어사랑이 제자 양성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중 문화의 다리로서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들과 자매결연 관계를 통해서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중 간의 문화교류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경희대학교 등의 수도권 대학을 포함해서 경남대학교, 원광대학교, 배재대학교, 전남대학교, 영남대학교 등 다수의 대학과 자매결연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새로운 결연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매년 수차례 대학관계자들과 정부 교육당국자들의 한국 방문을 추진한 노력은 민간 대학차원의 교류를 넘어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 대학 최초로 두 나라 석사 과정 대학원생을 공동 양성하는 과정을 개설한 것이다. 외국 대학과의 교류를 교육부 차원에서 선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김 교수가 속한 상해외국어대학 동방대학원장(우리나라 대학교의 학장) 엄정국 (嚴庭國) 교수는 우리 김기석 교수가 한국어 발전과 양국의 문화교류에 대한 공로로 이 상을 받는 것은 원장 입장에서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그 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기석 교수는 외국 대학과의 교류는 많았지만 교육부에서 선정하는 프로젝트는 없었죠. 그런 면에서 한국어 학과가 앞장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적극 호응해 주시고, 국제교류관계 발전, 중국에서의 인재양성, 특히 박사과정을 통해 해 마다 두 명에서 네 명 씩 배출되고 모두 대학에서 다시 한국어 교수로 일하게 되니까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당시의 회상과 의의를 전한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고찰하고 온 우수한 교육환경과 문화를 적용하기에는 부족한 국내 여건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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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마비상태에 빠졌고 전국 각지의 청소년은 홍위병으로 조직되었다
.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 교수는 군대를 택했다.

 

 

늦은 출발 그러나 거침없는 한국어 사랑

김기석 교수의 한국어 교육 여정은 상해의 신작로처럼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김 교수의 아버지는 함경북도에서 8살 때 재해를 피해 가족들과 이주해 왔다. 어머니는 연변 출신이다. 김 교수 본인은 길림성의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쪽으로는 동포 2, 어머니 쪽으로는 3세가 되는 셈이다. 김 교수는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때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순식간에 경직된 사회는 교육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육은 마비상태에 빠졌고 전국 각지의 청소년은 홍위병으로 조직되었다.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 교수는 군대를 택했다. 5년의 군복무, 전역을 하고 연변에 돌아왔을 때 10년간의 문화혁명이 끝나고 대학이 기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바로 대학입학시험에 응시했다. 그 결과 1977년에 연변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늦게 시작한 공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81년 대학을 졸업하는 동시에 능력을 인정받아 재학 중이었던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가정도 꾸렸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는 당시에는 결혼을 하기에 아주 늦은 나이였다. 늦은 학업과 늦은 결혼, 늦은 출산으로 누구보다 빠른 하루를 보내면서 교수생활과 동시에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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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으로서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 자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꼭 있게 됩니다. 있게 되죠. 이런거 보면 문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게 되지요. 민족문화의 우수성이라고 할까요? 배우게 되고 습득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됩니다.”

 

 

내가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한국어를 가르치기 때문이 아니다

김 교수는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은 당연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는 중국 국적을 가졌으니까 국적을 놓고 말하면 중국인이다. 그러나 뿌리에는 민족이 있으니까. 동일한 민족으로서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이나 자부감은 선조 때부터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에는 언제나 연변에서 공수해 온 김치와 장으로 한국식단을 꾸린다. 외식을 할 때에도 한국인 거리에 있는 한국식당을 이용한다. 늦게 얻은 아들은 벌써 작년에 같은 대학의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부부 모두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들 역시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 아직도 밥상에는 김치가 있어야 된다고 강조하는 그는 한민족이다.

그는 상해외국어대학에 있는 많은 학과 중에서 한국어학과 학생들이 가장 예의가 바르다고 자랑한다. 다른 과 교수들로부터 한국어과 학생들이 인사도 제일 잘하고 다른 과와 다르다는 칭찬을 듣는다면서, 학생들을 보면서 한국어 학과 학생들이 아주 잘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자부심을 느낀다고 신이 나서 소개한다. 박사과정 박사 후 과정의 제자들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부도 열심이라고 이어 붙인다.

한민족으로서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 자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꼭 있게 됩니다. 있게 되죠. 이런 거 보면 문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게 되지요. 민족문화의 우수성이라고 할까요? 배우게 되고 습득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됩니다.”

김 교수가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문화를 전수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중국에서 살면서 우리 민족이나 한국의 문화를 전수해서 많은 제자를 양성한다.’ 는 것이 정년이 지난 나이에도 교편을 놓지 못하게 하는 강한 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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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역에서
200여개 대학에 개설되어 있고, 대형 어족인 아랍어가 30여 개 학교에 개설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규모이다. 현재 약 70여개의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각계의 후원은 한국어 발전의 힘

지금까지 한국 정부와 각 대학교의 중국 내 한국어 교육의 지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사회단체나 각 기관 중국 속에 한국어 교육에 대한 지원은 비교적 잘 되어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교수가 속해있는 상해외국어대학의 동방어학원에는 9개의 언어학과가 있다. 그 중에 한국어학과만 한국의 국제 교류재단에서 학술회의 등의 참가비용이 지원된다고 한다. 사회단체나 각 기관에서 중국내 규모에 있어서는 한국어가 영어와 일본어 다음으로 세 번째이다. 중국 전역에서 200여개 대학에 개설되어 있고, 대형 어족인 아랍어가 30여 개 학교에 개설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규모이다. 중동문제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아랍어학과도 급부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약 270여개의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평가 이면에 과열된 중국 내 대학의 한국어 강좌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992년 국교 정상화 당시에 한국어 학과가 설치된 경우는 손에 꼽힐 정도였지만 지금은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강좌가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민영대학에서 한국어과 개설은 이미 그 열기가 가라앉기 시작했고 하나 둘 씩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개 대학이 너무 한 번에 많아지고 덩치가 급속하게 커졌죠. 학생들이 줄어드니까 운영이 잘 안되고 교육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해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학 가는 인원도 줄어들고 있고, 졸업생들이 취업하는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커졌다. 조정을 좀 거쳐야겠죠. 자동적으로 줄어들게 될 겁니다.”

중국에서 한국어 교육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중·한 관계가 밀접하면 밀접할수록 좋으면 좋을수록 한국어교육도 아주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우호적인 한·중 관계는 한국어 경쟁력이 도움이 된다는 얘기이다. 관계가 좋으면 학생들의 지원율이 좋아지고, 학생들의 지원율이 좋을수록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양국의 관계는 아주 좋다는 평이다. 박근혜 정부 이 후에 상호 보완의 전략적 관계가 한·중 중·한이 전체적으로 교류가 되고 관계가 좋아지고 있어 고무적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동방대학원장 역시 지금의 한·중 관계를 역사적으로 아주 양호한 관계가로 정의하고 이번 수상을 계기로 상호 협력과 지속적인 발전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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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대한민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중국 최고의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전파할 인재를 뚝심있게 양성하고 있는 김기석 박사는 한국의 근대사의 여러 장면과 오버랩 되는 자랑스런 해외동포 교육자이다.

 

 

해외동포대상 최초의 교육자,

내가 받은 사명은 일생을 통해 양국의 교류를 발전시키는 것

경제인은 경제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교육자는 교육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양국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김기석 교수의 지론이다. 대단한 계획은 없다고 설명하는 그의 표정은 그의 계획 속에 교육자 특유의 대쪽같이 곧은 성품과 천명을 받드는 사명감이 바위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준다. 인재양성, 대학들 간의 관계, 중국과 한국의 문화적 다리역할로 양국의 교류 발전 증진을 위해서 힘을 바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제가 해외동포대상을 받게 되었다고 하니까 영예감이라는 것보다 부끄러운 생각이 먼저 듭니다. 중국에서 한국학이나 한국학 연구 분야에도 한평생 인재양성을 위해 몸담고 있는 많은 분들이 계시죠. 부끄럽지만 제가 이 상을 받게 된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인재양성에 노력해야 되겠다. 남은 생애를 통해 한국과의 교류관계를 더욱 더 발전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는 매우 빠르다. 상해는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폭풍 같은 도시이다. 상하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세계적 규모이 도시가 된 데에는 중국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열강들의 각축이 큰 역할을 했다. 이곳은 대한민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중국 최고의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전파할 인재를 뚝심 있게 양성하고 있는 김기석 박사는 한국의 근대사의 여러 장면과 오버랩 되는 자랑스런 해외동포 교육자이다.

 

 

외국어 분야의 명문대학 상해외국어대학,

러시아어 전문학교에서 최고의 외국어 대학으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종합대학을 대학교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를 빼고 대학으로 부른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무슨 무슨 대학이라고 하면 한국의 대학교’, 종합대학인 셈이다. 또한 중국에서 이야기하는 학원이라고 하면 한국의 학원과는 달리 단과대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상해외국어대학은 중국 내 외국어 분야 최고의 대학으로 정평이 나 있다. 중국의 대학 교육기구는 모두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 교육부 직속 대학과 지방대학 그리고 민영대학이 그것이다. 교육부 직속 대학은 말 그대로 교육부에서 관리하는 대학이다. 지방대학은 성, 자치구, 직할시에서 관리하는 대학, 마지막으로 민영대학이라 함은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의 성격과 비슷하다. 그러나 민영대학이라 해서 한국의 사립대학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의 대학은 국립대학 위주였으나 개혁개방 이후에 사립대학이 생기기 시작해서 아직 발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상해외국어대학은 교육부 직속 대학이다. 중국 전역에서 외국어 중심 대학으로 교육부 직속 대학은 상해외국어대학과 북경외국어대학이 전부이고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외국어 대학은 모두 지방대학이다. 상해 뿐 만 아니라 중국에서 외국어 대학이라고 하면 상해외국어대학을 명문으로 꼽을 정도로 일류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상해외국어대학은 해방 직후인 1949년에 러시아어 전문학교로 설립되었다. 당시 중국은 주로 러시아의 기술·사회제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활동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인재의 배출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56년에 상해외국어학원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과를 추가 개설했으며, 1963, 중앙정부로부터 교육부 직속 중점 외국어 교육 대학으로 등재. 되었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국제적인 종합대학으로의 전환정책을 펼친 결과로 1994년에 지금의 상해외국어대학으로 명칭과 조직을 개편했다. 현재 25개의 외국어전공을 포함 38개과에서 28백 명 이상의 대학원생과 약 6천명의 학부생, 1,305명의 교수진이 학업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기석 교수 속해 있는 동방어학원은 2개 학부에 9개 학과가 설치되어 있는 상해외국어대학 내 아시어 어족 중심의 단과대학이다. 한국어교육을 포함하여 명실상부(名實相符) 중국 전역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김기석 교수가 전문가로 겸직하고 있는 국제문화교류학원도 중국내에서 손꼽히는 일류 유학생교육기관으로 본과, 석사, 박사, 박사후 과정이 설치되어 있다. 해마다 800 여 명의 한국유학생들이 입학하여 교육을 받고 있는데 가장 많은 유학생 비율을 차지한다. 다음이 일본, 유럽, 아프리카 순이다.

 

 

취재 최병우 국장 강경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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