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수필) 약속과 신뢰에 대하여

기자명: sntd01   날짜: 2017-01-17 (화) 11:24 2년전 1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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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영 작가>
   대전중구문학회 회장,
   한글(한국어)세계화운동연합 대전본부장
 
   식구는 많고 농사채가 소규모였던 우리 집은 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하였다. 따라서 위로 누나 두 분이 있었는데 부모님은 서둘러 시집을 보냈다.
 
 이유는 먹을 것 없고 대추나무 연 걸리듯 대롱대롱 매달린 식솔을 하나라도 더는 게 살아가는 선결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마을에 밥이나 안굶는 집을 골라 어렵게 혼수품을 장만하여 시집을 보냈다.
 
 우리집에서는 고구마에 보리밥도 가까스로 끼니를 연명했지만 인근마을로 시집간 누나네는 흰쌀밥을 먹었다. 그래서 흰쌀밥 한 그릇 비우는 재미로 자주 다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나는 좀 더 잘 살기 위하여 이곳 저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살다가 결국 서울 달동네 판자촌을 찾아 셋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에는 시골보다 사람이 많고 일거리가 있는 서울이 낫다고 판단해서이다.
 
 누나가 서울 달동네 판자촌에 살 때도 마찬가지로 의지할데 없던 젊은시절 가끔 찾아들어 살며 신세를 졌다. 그럴 때 마다 매일 끼니를 걱정하고 사는 궁색한 살림살이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누나 나중에 돈 벌면 쌀 사드리지요.”
 “응 그래? 그래라. 말이라도 고맙다.”
 
 서울로 이사하여 가난하게 사는 누나에게 가난한 김우영 청년은 굳게 약속을 했다. ‘나중에 도와드리겠다고!’ 스무살 청년 때 누나와 한 약속을 결혼하고 자녀 셋을 낳고 버거운 직장생활하며 사는 탓에 50세 무렵에야 지킬 수 있었다. 월급쟁이 박봉으로 사는 게 넉넉히 않아서였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매년 설날과 추석명절에 얼마간의 돈을 보내드렸다. 그리고 어쩌다 서울에라도 가면 연세드시고 허리를 꾸정한 누나가 안스러워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고 드리고 왔다. 이러기를 10여년 지속되었다. 이 일도 지난해 직장을 정년을 했으니 이제 그 약속을 지키기 쉽지 않게 되었다. 
 
 이 약속은 밑으로 동생들 세 명이 지금껏 지키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큰 여동생은 매년 김장을 갖다드리고 있다. 또한 남동생은 고향 충남 서천에서 농사지은 쌀을 매년 가을 7남매에게 골고루 나누어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 충남 예산에 사는 막내 여동생도 수시로 누나네를 방문 용돈을 드리고 있다.
 
 동생들도 마찬가지로 젊은시절 누나네를 드나들며 신세진 은혜에 보답의 약속이다. 이런 동생들을 보고 누나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한테 도와준 게 별로 없는데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니 내가 늙으막에 동생들 복이 터졌구나. 고맙다. 사랑하는 내 동생들아!”
 
 약속(約束)이란 말을 사전적 의미에서 찾아보면 이렇다. 사람이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거나 또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라고 정의하고 있다.
 
 혼자 살 수 없는 다양한 세상의 구조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약속을 하며 살아간다. 흔히 직장에서 하는 말이 있다.
 
 “언제 차 한 잔 해야지요?”
 “다음에 식사 한 번 해야지요?“
 
 어떤 이는 덕담 차원의 립 써비스(Lip Service)라고 한다. 그야말로 이 말은 ‘입 말, 말 뿐’의 약속이다. 별다른 생각없이 내뱉은 말의 홍수가 거짓 위선으로 켜켜이 쌓인 말풍선이 되어 우리 사회를 약속 안지키는 불신의 사회로 만들고 있다.
 
 따라서 주변에서 ‘언제 식사 한 번 해야지요?’ 하는 인사를 받으면 수첩을 꺼내들며 이렇게 대답한다.
 
 “네 그래요. 고마워요. 다음주 금요일 시간이 있는데 식사 할까요?”
 
 그러면 상대방은 움찔하며 머뭇거린다. 즉 인사치레로 한 말을 찌질하게 수첩에다 적느냐? 인상을 준다. 별 생각없이 내뱉은 상대방 인사를 받은 내가 도리어 무안할 때가 있었다.
 
 직장과 문화단체 생활을 하는 나는 약속이 많아 윗주머니에 늘 수첩을 넣고 다닌다. 그리고 글쓰는 사람으로서 그때 그때 단상(斷想)을 메모한다. 또한 키타를 연주하는 터에 악보와 노랫말을 기록하고 길거리와 차 안에서 외우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메모수첩은 1년 365일 새까맣다. 핸드폰에 입력을 하지만 더러 문자가 사라지는 기계를 믿을 수 없어 만년필로 기록한 약속이 최고이다. 이래서 ‘천재는 연필만 못하다!’ 한다.
 
 책을 많이 읽고, 지성인을 표방하는 문인, 특히 문화단체에서의 약속은 중요하다. 특히 단체간에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반복하면 신뢰가 떨어져 말풍선의 허접한 사람이 된다. 함께 하기로한 일은 한결같이 변함없어야 한다. 즉, 초심(初心)이 종심(從心)이어야 한다. 어떤 환경에 따라 수시로 조령모개(朝令暮改)식이면 안된다.
 
 지금 우리는 21세기 신용의 첨단과학시대에 살고 있다. 돈만이 신용이 아니다. 그 돈을 움직이는 게 사람의 약속과 신뢰이다.
 
 “그 사람은 믿을 수 없어?”
 “그 사람과 약속은 하나마나야?”
 
 이렇게 허접한 대접을 받으며 소중한 삶의 가치를 떨어뜨려야 하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하는 약속은 갚지 않은 부채이다. 약속은 강요를 당하지 말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하지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은 모두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약속 중에서 가장 지키기 힘든 약속은 자신과의 약속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남과의 약속도 쉽게 져 버릴 수 있다. 또한 작은 일에 소흘한 사람은 큰일에도 소흘한 법이다.
 
 세계 4대 성인중에 한 분으로 일컫는 중국의 공자(孔子)는 이렇게 말했다.
 
 “이익을 놓고 의리를 생각하고, 위급한 시기에 목숨을 내놓고, 오랜 약속을 평생토록 잊지 않고 지킨다면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스무살에 누나와 약속을 10여년 지킨 부족한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요컨데 장사꾼 같이 약속하고, 군함(軍艦)같이 갚아야 한다고 하는데 스스로와 약속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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