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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정석’ 새로 쓰다

알파고-이세돌 세기적 대국
기자명 : 김성화 기… 입력시간 : 2016-04-08 (금)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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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 패러다임에 큰 변화 예상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5번기 후폭풍이 김정은의 수폭실험 때보다 더 거세다. 대국이 진행된 지난 3월 9일 부터 15일 까지 일주일 동안 전 세계의 매스컴은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포 시즌스 호텔에 포커스를 맞췄다. 대단한 열기 였다.
바둑 관련 행사가 이처럼 파격적인 조명을 받은 것은 전무후무 하리라. 무엇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이렇게 집중 시켰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세돌을 4대1로 제압한 인공지능(AI)의 출현에 놀라고 있다.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표시하는 휴보 로봇 정도로 생각했던 알파고가 바둑판 위의 형세를 스스로 판단하고, 판세가 여의치 않을 때 창의적 승부수까지 던질 줄 아는, 그리고 결국은 최고의 인간 고수를 넘어뜨리는 가공할 존재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곧 인공지능이 주도할 4차 산업혁명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필자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문제를 거론할 입장은 못 된다. 다만 바둑을 즐기고 좋아하는 애기가로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이번 5번기가 바둑의 미래에 끼칠 영향과 결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바둑의 역사는 약 4300년에 이른다. 중국 하(夏)나라의 걸왕이 석주에게 명하여 만들어 졌고 요(堯)왕과 순(舜)왕이 자기 아들들의 왕도 교육을 위해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태어난 바둑은 14세기 경 일본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일본의 지방 제후들이 약 600년간 경쟁적으로 바둑을 지원하면서 이론화, 체계화 시켰고 20세기 들어 오청원(吳淸源)과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에 의해 현대 바둑의 틀과 정석이 갖추어졌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일본바둑의 기본정석이  약 2만 여 개가 되는데 이 중 5500여 개가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바둑정석 대사전 이란 이름으로 프로 지망생들의 필독서가 되어 있다. 정석이란 바둑판의 네 귀에서 화점, 소목, 고목, 삼삼을 중심으로 초반에 생기는 각종 변화를 정형화 한 것을 말한다.
이렇게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바둑이 금번 알파고의 등장으로 모든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바둑의 패러다임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기존 바둑이론들의 재정립과 재해석은 불가피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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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판마다 기존정석에 없는 신수
알파고-이세돌의 이번 대국을 보면 매 판마다 기존정석에 없을 뿐 아니라 프로기사들이 한 번도 두어본 적이 없는 신수들이 등장 한다. 이세돌도 아마 그때마다 자못 놀랬을 것이다. 알파고는 1207대의 컴퓨터로 이길 수 있는 최적의 수만을 찾아내어 둔다고 한다. 그런 알파고에게 바둑 정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기존의 모든 바둑이론은 휴지 조각이 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앞으로의 바둑은 그 행마나 정석이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구분될 수밖에 없다. 특히 프로 바둑기사들은 알파고가 두는 바둑 착점 하나하나를 다시 연구하고 정리하여 새로운 정석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이제 바둑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제3의 길을 찾아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바둑계 전체를 보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알파고-이세돌의 5번기 이후 바둑에 대한 관심과 호응도가 폭발적이다. 시내 각 기원에는 손님들로 만원사례이며 바둑도장에는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바둑 붐이 두 차례 있었다. 조치훈 9단이 일본에서 기성, 명인, 본인방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하여 이른바 대삼관왕이 되었을 때와 조훈현 9단이 네웨이핑(攝偉平)을 꺽고 잉창치배를 차지하고 같은 시기에 이창호 9단이 농심배 등 세계 타이틀을 연달아 획득 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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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 패했지만 천재성 각인
당시 우리나라의 바둑 인구는 약 1천만 명까지 치솟았는데 그 후 컴퓨터 게임 등에 밀려 다소 저조 하던 터에 알파고가 이제 제3의 바둑 부흥기를 마련 해준 셈이다.
그러나 프로기사들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그들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권위와 신비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프로 기사가 9단이 되면 입신(入神)이란 호칭을 얻는다. 그것은 바둑 신(神)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인데 이제 바둑 신은 프로 9단이 아니라 알파고가 그 자리를 대신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90년대 초 일본바둑의 정상에 섰던 임해봉(林海峰) 9단이 명인전 타이틀을 딴 직후 “바둑의 신(神)이 있다면 몇 점 정도로 버틸 수 있겠느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3점 정도면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만약 알파고가 조금 더 진화되어 바둑판 위의 모든 변화를 다 파악 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우리는 그를 ‘바둑의 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임해봉 9단의 의견대로라면 최정상급 프로기사들은 결국 알파고에게 3점을 놓고 대국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프로 바둑 기사들에게는 정말 끔찍한 일이겠지만 금번 알파고-이세돌 대국을 관전하면서 그것이 결코 공상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끝으로 이세돌 9단이 금번 알파고와의 제4국에서 보여준 78번째 수는 바둑사에 길이 남을 신의 한수로써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전체 대국 결과는 4대1로 패했지만 알파고를 이길 수 있었던 이 경천동지 할 한수로 이세돌은 그의 천재성을 세계인에게 각인 시킬 수 있었고 이번 대국이 남긴 커다란 성과물 이었다.    
  
 알파고가 묻는다 
 기계가 과연 사람을 대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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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의 바둑 대결에서 기계가 이겼다. 이로써 인공지능 알파고는 인간에게 근본적인 질문하나를 던지고 있다. 인간성(humanity)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속성이 다만 기능에 불과하다면 기계는 언젠가 사람을 대신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 물질로 환원될 수 밖에 없다는 환원주의(reductionism)나 물리주의(physicalism)의 주장은 옳은 것으로 확정될 것이다.그러나 인간이 궁극적으로 물질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어딘가 한 구석이 빠져있는 것 같아 머리를 갸웃하게 만든다.
  신인류 등장한다면 인간성은?
인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계라고 결론 내기 어려운 질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익을 넘어 선 숭고한 사랑을 보거나, 논리를 벗어난 자유의지나, 생각을 통째로 뛰어넘는 통찰에 이르는 경지 등…. 기계론(mechanism)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인간성을 부정한다면 어디에서 인간의 본 모습을 찾는 단 말인가?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 양상을 본다면 인간의 미래는 결국 기계에게 모든 영역을 양보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은 ‘2045년쯤에 인간은 인공지능과의 결합으로 인류의 육체적, 지적 능력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시점, 즉 특이점(singularity)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생 인류는 사라지고 신인류가 등장한다는 말이다. 그때 인간성은 어떻게 변할까? 그렇게 되면,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고 혹 몰아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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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논쟁이 불붙던 1951년, 쿠르트 괴델(Kurt F. Goedel)은 자신의 유명한 ‘불완전성 정리(The Incompleteness Theorem)’을 적용해 인간이 만든 기계는 인간을 능가할 수 없다고 논증한 바 있다. 그의 논증 과정을 수학의 문외한으로서는 해독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논증이 지시하는 함의에 대해서는 웬만한 사람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논증은 결론적으로 “지능이 형식화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지능은 항상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일관된 기계를 만들 수 있고 또 그 기계가 인간의 지성과 의식을 그대로 모방할 수는 있으나 그 기계는 그 일관된 체계 안에서는 완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불완전성 정리’을 적용해 볼 때, 기계의 일관성은 그 체계 안에서 옳다고 입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기계는 인간이 만든 것으로서 인간이 만든 체계 안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체계를 능가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과학의 성과가 너무 눈부시기 때문에 혹 괴델의 논증이 뒤틀리는 경우, 즉 ‘뒤엉킨 차원’이라도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기도 한다. 이런 걱정은 자못 아이로니칼하다. 괴델의 논증은 수학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과학의 토대인 수학의 지위를 강등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질주는 잠시도 멈추지 않아 엉뚱한 걱정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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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에 진입
이런 고뇌의 상황에서 신경과학자인 MIT대 승현준(Sebastian Seung)교수의 말은 과학의 현재와 미래를 요약하고 있다 하겠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컴퓨터에 이전하고 다음에 이것을 재현하는 기술을 ‘정신 업로딩’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공상과학 소설의 소재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통칭해 트랜스휴머니즘이라고 부른다. 그는 트랜스휴머니즘을 긍정하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과학의 목표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트랜스휴머니즘의 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기계가 그 중심에 있으며 인간의 심성(mentality)과 본성(humanity)은 본래의 모습을 서서히 잃어가는 시대. 왠지 차갑고 싸늘한 시대의 정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러한 시대에, 시골 초가집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와락 그리움에 몸을 떠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세상이 핑핑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리움이나 아름다움, 꿈, 깨달음 같은 질적 인간성은 꼭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역시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박종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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