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투데이

<시사뉴스투데이 & 한국기자연합회 안심어린이집 선정> 

안심어린이집 선정 캠페인

 

1. 안심어린이집 캠페인 취지

 

최근 어린이집에서 간혹 아동학대 등 사건사고가 일어나고는 있으나, 대다수의 어린이집은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를 확대 과장 보도하는 언론들에 의해 성실히 일하는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들까지 부모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매도당하는 현실은, 결코 어린이집뿐만이 아닌 부모자신과 그리고 사회에도 모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저희 시사뉴스투데이와 한국신문기자연합회가 공동으로 안심어린이집 선정사업을 통해 이와 같은 선입견을 없애고 안심하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2. 절차

안심어린이집 선정기준

·영상을 통한 실시간 학부모 확인가능 여부

·친환경 급식여부

·실내 공기 질과 같은 보육환경에 대한 문제

·학부모간의 소통문제

·원장님의 보육철학

 

대표적인 위 5가지 선정기준에 대한 사항을 1차로 평가인증 점수 및 평가 등을 통하여 선별과정을 거친 뒤 2차로 저희 기자가 방문하여 원장님과의 인터뷰를 한 후, 최종적으로 안심어린이집 심의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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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업을 통하여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 보육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안심하게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안심어린이집 선정 캠페인에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리며, 저희 시사뉴스투데이 취재 기자의 인터뷰에도 적극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최 : 한국신문기자연합회, 시사뉴스투데이

협찬 : KDB생명, 신한금융, 농업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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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정신의 상징, 담론을 던지고 떠나다

신영복(1941년 8월 23일 - 2016년 1월 15일)
기자명 : 편집부 입력시간 : 2016-02-12 (금)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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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의 북극성이 졌습니다. 시대의 방향을 가르켜 준 나침반, 시대의 스승을 잃고 웁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으신 참 지성인, 신영복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저 편 세상에서는 부디 편히 쉬소서” -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통일혁명당 사건 연루 정도에 비하여 무기징역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그는 20년 20일의 수형기간 동안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고독한 성찰로 들어갔다” -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시대의 어른이 가지는 한 마디 던짐은, 짧은 말 속에서도 많은 이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그랬고, ‘풍운아’ 채현국의 한마디가 그랬다. 그리고 한 권의 책으로 시작해 한 권의 책으로 끝이난 신영복 교수의 말이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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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꿈은 ‘일본 총독’
신 교수는 1941년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 고향은 밀양이지만 출생지는 의령이다. 교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조선 학생 차별 문제로 일본인 교장에게 항의하다 파면된 이력이 있었다. 신 교수는 아버지가 복직해 의령에서 근무할 때 관사에서 태어났다. 이후 행보를 보면 그런 아버지의 기질을 닮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신 교수에겐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의 아버지 관사에는 당대 저명한 학자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그중 한 분이 꼬마 신영복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고 한다. 그때 그가 한 답이 ‘일본 총독’이었다. 조선이 독립하고 일본을 식민지 삼게 된다면 자신이 일본 총독이 돼 일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겠다는 것이었다. 생각의 독특함과 신념, 뚝심이 동시에 보이는 부분이다. 떡잎이 보인다. 
어린 다섯 살에 경험한 독립은 신 교수가 똑똑히 기억하는 순간 중 하나다. 어린 그에게 일본인 교장이 살던 관사를 지키게 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왜 그랬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인 교장이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졌고, 집 안의 책상이며 서랍들이 다 열려 있었던 모습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 모습은 오래된 기억임에도 그의 머릿속에 광복이란 단어와 함께 또렷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됐다. 
두 번째 신 교수의 강렬한 기억은 나이 열 살에 터진 6·25 전쟁디다. 
신 교수가 살던 밀양은 인민군 치하에 들어가지 않아서 북한군을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억에 남은 전쟁은 아주 끔찍한 것이었다. 동네에서 조석으로 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이유도 모르고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봐야 했다. 그렇게 신 교수는 굴곡의 현대사 정중앙을 관통하며 자라났다.
1959년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청년이 된 신 교수는 또 다시 요동치는 현대사 한복판을 살아갔다. 
대학 입학 1년 만에 4·19혁명이 일어났고, 또 5·16 군사정변이 발발했다. 신 교수가 학생운동에 몰두하게 된 때는 5·16이 일어난 대학 3학년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그는 학생 서클의 구심점이자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러다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의하던 1968년 스물일곱 살 나이에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이 당시의 경험은 신 교수의 명저이자 대표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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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폭력이 전해 준 옥살이
신 교수가 대학원을 마치고 숙명여대에 강사로 나가던 시절, ‘청맥’이라는 잡지의 예비 필자 모임인 새문화연구회 모임에 안병직 등 선배들을 따라나가게 됐고, 여기서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의 김질락을 만나게 되었다. ‘청맥’은 통혁당 핵심들이 당의 합법 기관지로 설정한 잡지인데, 반미적인 논설이 종종 실렸다. 당시 신 교수는 대학원을 갓 졸업한 강사였고, 그렇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입장은 아니었다.
김질락과 그의 후배 이진영 등은 신 교수가 학생운동에 깊이 간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유심히 관찰하면서 접근했다. 어느 날 김질락이 정색하고 혁명을 지지하느냐고 물어오자 신 교수는 그렇다고 했고, 그날부터 김질락, 이진영과는 따로 만나게 됐다. 이것이 나중에 통혁당 산하의 민족해방전선으로 발표된 모임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등이 사형됐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 교수는 살아 있는 사건 관련자 중에서 가장 핵심 인물이 됐다. 이후 인터뷰를 통해 신 교수는 최고 책임자로 발표된 김종태나 조국해방전선 책임자로 발표된 이문규 등 핵심 간부들은 사건이 날 때까지 만나본 적도 없다는 것이 알려졌다. 공안당국의 기록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에서 나온 통혁당 관련 일부 서적에는 신 교수가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등과 함께 통혁당의 강령을 정하는 등 당의 핵심 성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나온다.
신 교수는 고문도 힘들었지만, 조사 자체가 고문이었다고 한다. 청년기의 고민과 방황이 어린 수많은 만남과 토론, 그리고 서로 빌려주고 빌려 보았던 수많은 책들은 몇 십 장의 자술서와 몇 십 장의 조서와 몇 줄의 법률용어에 의해 온통 조직적인 관계로 규정됐다. 신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한 사람의 복잡한 사상과 의식이 규정되고 단죄되는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고 한다.
당시 육사교관으로 현역 장교 신분이었던 신 교수는 군사재판에 회부된다. 김형욱의 중앙정보부는 이문규를 구출하러 북이 파견한 공작선의 암호를 해독해 격침시키면서 2명을 생포했는데, 이들도 통혁당 관련자로 사형을 언도하는 등 이 사건의 크기를 부풀리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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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과 2심에서는 반국가단체 구성죄로 사형이 선고됐다. 최고형이 징역 2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인 반국가단체 구성 예비음모죄로 기소된 사람에게 군사재판에서 기소 죄목이 아닌 반국가단체 구성죄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하고 선고했다는 것은 신 교수에 대한 국가의 폭력을 나타냈다. 군 검착도 이를 아는지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죄목을 구성죄로 바꾸는 공소장 변경 조치를 취했고. 재판부는 정상을 참작해 최고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신 교수는 학생 동아리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나쁜 대법원 판례를 남기는 것이 좋지 않다는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상고를 포기했다. 무기형으로 감형된 후 1988년 8·15 특사로 풀려나기까지 20년 간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날은 1970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감옥에서만 보낸 시간이 20년이었다. 신 교수는 2015년 펴낸 「담론」을 통해 사형수가 됐을 때도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신문지 크기의 햇볕에 신 교수는 죽지 않을만한 위안을 얻은 것이다. 이와 함께 신 교수가 찾은 살아가는 이유는 깨달음과 공부였다고 후에 고백했다.

수감 기간을 채우고 출소한 신 교수는 2006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지난해까지 대학원에서 강의하며 10여 권의 저서와 명강의로 세상을 풍성하게 채웠다. 무엇보다 서예가로서의 그의 명망은 저자로서의 명성을 넘을 정도였다. 따뜻함이 배어 있는 ‘쇠귀체’를 창안하기도 했다. 
특히 대중에게 잘 알려진 것이 소주 ‘처음처럼’이다. ‘처음처럼’은 신 교수가 즐겨 쓰던 문구와 글씨다. 당시 신제품 개발을 마치고 제품명을 고민하던, 주류 업체의 광고를 담당하고 있던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가 신 교수의 문구 ‘처음처럼’을 추천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손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을 맡으며 새 당명 ‘더불어’까지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도 신 교수의 저서「더불어 숲」에서 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구와 글씨체가 소주 이름으로 쓰이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존경받는 학자가 과연 술 이름에 자신의 시그너처와 다름없는 글씨체를 사용하도록 허용할지 모두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서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대중적 술 소주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면은 신 교수가 시대와 함께한다는 느낌을 줬고, 신 교수의 말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갖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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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바탕이 된 담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 교수의 젊은 날과 중년의 생각의 집합체이다. 신 교수가 옥중에 있었을 당시 출간됐던 기존의 책은 1976년 2월의 편지부터 실려 있었으나 이후 책에는 ‘청구회 추억’ 등 1969년 남한산성육군교도소에서 기록한 글들과 1970년대 초반 안양·대전교도소에서 쓴 편지들이 누락 없이 완전한 모습으로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신 교수의 20대 사색의 편린들과 어려웠던 징역 초년의 면모까지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신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집필 동기를 

“교도소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내던져진 충격 속에서 어떻게든 당시 생각을 기록해두면 언젠가 잃어버린 세월을 기억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긴 글은 물론이고 짧은 글조차 통제된 집필 도구와 장소, 시간 등으로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이달엔 이런 얘기를 한번 써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한 달 내내 그걸 생각하면서 거의 완벽한 문장 형태를 머릿속으로 미리 정리했다.”

라고 책 속에서 밝히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의 결과라고도 보인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영어의 몸으로 겪어낸 20년 20일간의 옥중 삶의 흐름이 저자의 고뇌 어린 사색의 결정과 함께 잔잔히 펼쳐진다. 일부 편지의 원문이 그대로 살려 실었을 뿐 아니라 수신자 중심이 아닌 시기별로 구성되어 있어 저자의 20년 20일 동안 옥중 삶의 흐름과 고뇌 어린 사색의 결정들을 더욱 가깝게 볼 수 있다. 
또 책에는 그가 감옥에서 그렸던 그림,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휴지와 작은 봉함엽서 등에 철필로 깨알같이 박아 쓴 편지 일부도 볼 수 있어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온 나라 국민들을 사색으로 물들게 했다. 출간 당시 경향신문은 “새벽이슬처럼 맑으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특별한 책”이라 평했고, 인터뷰에서 신 교수는 이 옥중 편지를 읽은 사람들이 이제는 감옥 밖에서 사는 그에게 도통한 모습을 기대할 때가 많아 곤혹스럽다는 유머 섞인 답을 내놓기도 했다. 강산이 몇 번 변했지만 많은 이들이 인생의 책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 이 책은 이제 고전의 대열에 당당히 올랐다. 누군가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의 ‘수상록’에 비견되는 옥중 문학의 백미라 평가하기도 한다.
지난해 4월에 발간된 ‘담론’은 결국 신 교수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강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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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는 ‘강의’ 출간 이후 10년 만에 출간되는 신 교수의 ‘강의록’이다. 이 책은 동양고전 말고도 ‘나무야 나무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신 교수의 다른 책에 실린 글들을 교재 삼아 평소에 이야기하신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나아가는 탈근대 담론과 세계 인식, 인간 성찰을 다루고 있다. 신 교수는 2014년 겨울 학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대학 강단에 서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가 ‘마지막 강의’가 된 이유다. 
‘담론’은 근대와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존재론’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하고, 스스로 발 딛고 설 수 있도록 손 내밀어 주는 신 교수의 가르침이 가득하다. ‘담론’에서 신 교수는 동양 고전의 풍부한 사상과 더불어 자신의 기나긴 감옥 생활을 통해 얻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울림 있게 전한다. 인간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성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뿐 아니라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폭넓고도 묵직하게 전하는 신 교수의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 매몰된, 역사적 관점을 잃은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기에 충분하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존재 형태가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상품교환 관계입니다.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가 상품교환이라는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입니다. 얼굴 없는 인간관계, 만남이 없는 인간관계란 사실 관계없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유해 식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서로 만나서 선線이 되지 못하고 있는 외딴 점點입니다. 더구나 장場을 이루지 못함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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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관계’ 안에서 개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습관적 사고에 커다란 방향 전환을 일으킨다. 사회 문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담론의 핵심’으로써의 ‘관계론’을 말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강의실에서 더 만나지 못하는 미안함을 책으로 대신한다며 이 책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렇게 신 교수는 마지막 강의를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김종수 취재기자



 


<시사뉴스투데이 한국기자연합회 안심어린이집 선정> 

안심어린이집 선정 캠페인

 

1. 안심어린이집 캠페인 취지

 

최근 어린이집에서 간혹 아동학대 등 사건사고가 일어나고는 있으나대다수의 어린이집은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를 확대 과장 보도하는 언론들에 의해 성실히 일하는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들까지 부모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매도당하는 현실은결코 어린이집뿐만이 아닌 부모자신과 그리고 사회에도 모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저희 시사뉴스투데이와 한국신문기자연합회가 공동으로 안심어린이집 선정사업을 통해 이와 같은 선입견을 없애고 안심하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2. 절차

 안심어린이집 선정기준

·영상을 통한 실시간 학부모 확인가능 여부

·친환경 급식여부

·실내 공기 질과 같은 보육환경에 대한 문제

·학부모간의 소통문제

·원장님의 보육철학

 

대표적인 위 5가지 선정기준에 대한 사항을 1차로 평가인증 점수 및 평가 등을 통하여 선별과정을 거친 뒤 2차로 저희 기자가 방문하여 원장님과의 인터뷰를 한 후최종적으로 안심어린이집 심의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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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업을 통하여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 보육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안심하게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안심어린이집 선정 캠페인에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리며저희 시사뉴스투데이 취재 기자의 인터뷰에도 적극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최 한국신문기자연합회시사뉴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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